새로운 방식의 글쓰기…정지돈 소설집 '내가 싸우듯이'

좋은 베트남 - 2016/06/07 157 0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신예 작가 정지돈(33)의 소설은 독특하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방식의 소설 쓰기를 보여준다.

그의 단편소설에서 화자인 '나'는 한국에 살고 있으며 한때 문학과 가까이한 적이 있거나 지금도 글을 쓰는 일을 하는 젊은이로 설정된다. 작가 자신을 표상하는 듯한 인물이다.

그런데 소설 속 화자가 만나는 인물들은 전혀 평범하지가 않다. 어떤 예술적 혁명을 꿈꾸며 떠도는 가상의 인물, 또는 실제로 저항적이거나 혁명적인 삶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예술가들이 등장한다.

독자는 이런 소설을 통해 그동안 잘 몰랐던 역사 속 실존 인물을 만나게 된다.

이런 소설 쓰기 방식은 사실(fact)과 허구(fiction)의 결합을 일컫는 '팩션'(faction)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정지돈의 소설은 사실을 기반으로 허구를 가미한 역사소설 같은 장르와는 차원을 달리한다. 반대로 작가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상과 의식의 흐름 안에 실존 인물이 들어오는 형태로 사실과 허구가 교묘하게 뒤섞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소설가 정지돈 [문학과지성사 제공]
소설가 정지돈 [문학과지성사 제공]

 

이런 독특한 단편소설 9편을 만날 수 있는 소설집 '내가 싸우듯이'(문학과지성사)가 출간됐다.

이 책의 첫 소설은 '눈먼 부엉이'다. 소설 속 '나'에게 노르웨이에서 '에리크 호이어스'라는 젊은 소설가가 찾아온다. 그는 나의 친구 '장'의 여자친구의 친구인데, 장이 갖고 있다는 사데크 헤다야트의 소설책 '눈먼 부엉이'를 내가 보관하고 있지 않냐며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사데크 헤다야트(1901∼1951)는 이란 출신의 작가로 프랑스 유학 이후 이란에 돌아가 처음으로 카프카의 작품을 번역해 소개했다. 이후 이란 정부의 탄압을 받고 해외로 망명해 소설을 썼고, 1951년 파리의 한 아파트에서 가스를 틀어놓고 자살했다.

정지돈의 소설 '눈먼 부엉이'는 노르웨이에서 온 젊은이가 왜 사데크 헤다야트의 책을 찾게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허구로 그리면서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소설가 헤다야트의 삶을 들려준다.

소설집의 두 번째 작품 '뉴욕에서 온 사나이'에는 최근 기억상실증에 걸린 '나'에게 미국 뉴욕에서 레이날도 아레나스라는 작가가 찾아온다. 레이날도 아레나스 역시 1990년 별세한 쿠바 출신의 작가로 카스트로 정권하에서 탄압받다 미국으로 망명해 여러 소설을 남겼다.

올해 문지문학상 수상작인 '창백한 말'은 주인공 '장'이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작가 보리스 사빈코프의 소설 '창백한 말'을 인용해 일기를 쓰며 혁명가의 삶을 꿈꾸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작년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수상작인 '건축이냐 혁명이냐'에서는 대한민국 마지막 황세손인 건축가 이구(1931∼2005)가 건축물 파괴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추구한 미국 예술가 고든 마타 클라크(1943∼1978)를 만나는 장면을 그린다.

작가는 여러 인터뷰에서 "저는 읽는 것은 곧 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세계 문학·예술사를 자신만의 시각으로 읽고 다시 토해낸 그의 소설은 독자에게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게 한다. 또 각자의 시대, 사회에 맞선 인물들의 사유 방식과 철학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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