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성

좋은 베트남 - 2018/04/13 151 0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 이런 유행가 가사는 애교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요즘 뉴스를 보면 남자는 단순히 여자를 귀찮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성폭력만 일삼는 야수 같은 존재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이다. 남성들의 성폭력과 관련된 새로운 뉴스들이 매일같이 쏟아져 나온다. 법조계부터 시작 된‘Me Too 운동’이 방송계, 문화예술계, 학계, 종교계, 군대, 정치계 가릴 것 없이 사회 전반에서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피해를 당했던 여성들의 입장에서는 그동안 참아왔던 복수의 칼을 제대로 휘두르고 있다. 오뉴월의 서리가 내려도 제대로 내리고 있다.

 

     “내 입이 더러워질까봐 내가 목격한 괴물 선생의 최악의 추태는 널리 공개하지 않으려 했는데”하면서 시작하는 어느 시인의 고발문 전문까지 기사화되었다. 후배 여검사를 성추행한 혐의로 현직 검사가 긴급 체포되었다는 뉴스부터 시작해서, 여배우에게 안마를 해 달라는 어느 연출가, K대 교수 대학원생 성추행, 성추행 당한 여군 장교를 또 다시 성추행한 어느 장군의 기사, 최근에는 유력 대통령 후보였던 사람조차 수행 여비서를 성폭행 했다는 기사까지 참으로 사회 곳곳에서 벌어진 남성들의 횡포에 관한 기사가 넘쳐난다. 이쯤 되면 이 나라는 남성들의 권위에 의한 여성들의 성폭행이 매우 심각한 사회임에 분명하다.

 

     남성에 의한 여성의 성폭행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자면 하루로는 모자랄 정도이다. 그러나 기사화된 내용들의 공통적인 것은 직장 내의 상하관계, 아니면 갑과 을의 관계에서 이루어진 일들이다. 하지만 언론은 무차별적으로 마치 소설의 한 페이지를 쓰듯이 남성에 의한 여성의 성폭력에 대한 폭로성 기사를 연일 생산해 내고 있다. 그러니 이제는 남성들이 여성들과는 회식조차 안한다는‘펜스 룰’도 생긴다고 한다. 남성 위주의 사회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지금의‘Me Too운동’은 남성과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을 가진 남성들이 성적으로 여성에게 권력을 남용한 것이 그 핵심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없는 것은 아니다. 어느 친구의 이야기이다. 요즈음 자신의 아들이 직장에 나가기 싫어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여자 상사가 자신의 엉덩이를 툭 건들면서“튼튼하게 생겼네!”라고 농담을 자주 한다고 한다. 그 아들은 창피함을 느낌과 동시에 놀림을 당한다는 생각에 출근을 하기가 싫어진 것이다. 이것 역시 분명한 여성에 의한 남성의 성희롱이지만, 그 바탕에는 권력의 남용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권력의 의지를 갖고 있다. 권력이란 자신의 의지로 타인의 태도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나아가서 타인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자 하는 욕망을 말한다. 타인이 없으면 권력은 아무 쓸모가 없다. 그러기에 사회관계 속에서 권력의 탄생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러한 권력에는 자유와 폭력이라는 양면성이 있다. 자유로운 권력과 폭력적인 권력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타인에 대한 아무런 강제 없이 타인 스스로 나의 의지를 받아들일 때 바로 자유로운 권력이 탄생한다. 이러한 자유로운 권력은 타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 준다. 그리고 자유와 복종이 완전히 합치되는 순간에 이러한 권력은 절대적인 힘을 얻게 된다. 이러한 권력은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타인의 욕구와 요구에 응답하는 권력이기에 생산적이기도 하며, 아무런 강제 없이 타인의 영혼 안에 머물고 있기에 자유롭고, 영원한 권력이 된다.

 

한편, 우리가 이야기하는 대부분의 권력은 부정적인 측면에서의 폭력적인 권력이다. 이러한 권력은 타인의 자유를 고려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려는 권력이다. 이러한 권력 관계 속에서 타인은 자유가 제한되며, 자신은 낯선 타인의 의지를 강제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의 권력은 곧, 폭력으로 바뀌게 된다.

 

 

     이러한 폭력적인 권력은 생산적이기보다 타인을 억압하고, 파괴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권력은 그 수명이 그렇게 길지도 못하다. 강제된 행위에는 항상 저항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한 부대가 유대인 마을에 투입되어, 모든 유대인을 체포하여 남자는 포로수용소로 보내고 나머지는 모두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 충격적인 명령에 적극적으로 불복하는 병사는 아무도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의 병사들은 극도로 자유가 제한되어 있으며, 최소한의 저항만 있을 뿐이다. 즉, 자기가 저격수로 걸리지 않기만을 바라는 소극적인 저항뿐이었다. 인간은 이렇듯 폭력적인 권력 앞에 복종하기 쉬우며, 그 복종이 자신의 신념과 어긋나거나 잔혹한 일일지라도 예외적이지 않다. 그리고 사회 전체의 분위기가 개인보다 집단이 우선시되는 사회, 또는 권위주의적인 사회에서는 더욱 더 그러한 폭력적인 권력에 저항하기 어렵다.

 

     조선시대의 유교적인 가부장적 전통, 일본의 식민 통치, 그리고 해방이후 냉전체제 속에서 권위주의적인 정권의 탄생, 6.25사변 이후의 군부독재! 이 모든 것이 철저하게 우리 사회를 권위주의적인 분위기에 휩싸이도록 만들었다. 또한, 가장 가까운 군부독재시절에는“잘 살아보세!”를 외쳤지만, 또 한편에서는 권력에 의한 국민들의 탄압도 심했던 사회였다. 탄압의 대가로 산업화를 가져다 준 그런 사회에서는 폭력적인 권력조차 정당화되어 버렸다. 그러한 조직 속에서의 인간은 항상 권력자의 눈 밖에 벗어나지 않으려는 동기, 주변 사람들과 함께 하려는 동기, 따돌림을 두려워하는 동기, 사회 체제를 수용하려는 동기가 작용하기 때문에 권력에 저항하기가 쉽지 않다.

 

     지금 50대 이상의 기성세대들은 모두 그러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독재정권에 직, 간접적으로 저항한 사람들이라고 보아도 괜찮을 것이다. 그들이 부정했던 것은 국민의 자유를 탄압했던 폭력적인 권력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이 그러한 폭력적인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자신을 인질로 납치한 납치범과 오래 있다 보면 납치범이 자신을 구해 주는 구세주처럼 여겨지는 스톡홀름 신드롬으로 이 현상을 이해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인간은 모두 권력에의 의지가 있기 때문에,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 권력을 이용해서 돈, 조직에서의 인사, 그리고 성의 탐닉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기 때문에 그러하다고 이해해야 할까?

 

     자유가 제한된 부정적인 권력은 오래가지 못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율성이 위협받고 자유가 제한되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부정적인 권력 관계 속에서는 권력의 권위가 약해지면 곧 저항을 받게 되고, 그 순간 권력 관계는 깨지게 된다. 인간은 자신의 판단과 신념과 다른 상황적 압력에 처해 있을 때 일단 거부감을 느낀다. 하지만 권력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는 동안에는 그러한 거부감이 곧 바로 적극적인 저항으로 표현되지는 않는다. 아무런 죄도 없는 유대인을 사살하라는 명령에 모두 거부감은 느끼지만 자기가 저격수로 걸리지 않기를 바라는 소극적인 저항만 갖는 것이 대부분의 인간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권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타인을 돕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 권력에 반발하고 저항을 행동으로 옮길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사람들은 결정을 내리기 애매한 상황에서는 타인의 판단기준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기에, 4~5명의 동조자만 있어도 그들의 결정에 쉽게 동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저항하는 동료를 발견하고 그들과 함께 저항하는 것이 폭력적인 권력에 더욱 더 효과적으로 저항 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의‘Me Too 운동’도 마찬가지이다. 함께 하는 동료가 있기 때문에 그 운동이 사회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

 

     최근에는 급기야 학생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 했다는 의혹에 휩싸인 모 배우이자, 교수가 자살을 했다고 한다. 이제‘Me Too 운동’이 단순한 폭로, 고발 그리고 가해자의 사죄, 더 나아가서 남녀 간의 성차별의 문제로 확산되어서는 안 된다. 이 운동의 본질은 남성에 의한 여성의 성차별이 아니라, 폭력적인 권력의 횡포가 그 본질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이러한 운동이 권력의 올바른 사용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타인의 자유가 배제된 폭력적인 권력의 사용은 마땅히 거부해야 한다. 또한 익명적인 권력 역시 경계해야 한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익명적인 권력은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있는 권위주의적인 사회분위기를 의미한다.

 

     익명적인 권력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타인을 단순하게 반응하게 만든다. 그곳에는 반성, 합리적인 의심조차 생길 수 없다. 그러한 익명적인 권력 속에서 타인은 부정적인 자신의 상황이나 강제나 억압조차 자유로 착각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잘못된 사회규범일 수도 있는 이러한 권력의 간계도 경계하여야 한다. 권력의 올바른 사용은 타인의 자유를 전재로 해야 한다. 타인의 자유를 억압하지 않고 타인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권력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권력이다.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타인의 욕구와 요구에 응답하는 권력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생산적이고 성숙한 사회로 이끈다고 본다. 이러한 올바른 권력의 사용을 위하여‘Me Too 운동’이 계기가 되어 우리 사회가 더욱 더 발전된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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