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m Thang Long 아름다움을 대하는 자세

좋은 베트남 - 2017/10/04 29 0

다시 화가 롱을 만났다. 지난 15년 롱의 사전에는 거부와 거절이 없었다. 어떤 얘기도, 어떤 일정도, 어떤 사안도 상대가 원하는 대로 맞춰 주었다. 사람 우선, 세상 우선이었다. 그림은 언제 그리나? 얼핏 보면 롱은 시속(時俗)을 따라 사는 것처럼 보인다. 별 다른 생각 없이 다른 사람과 타협해가며 편하게 사는 것처럼 보인다. 시속의 혼탁에 묻혀 사는 것 같다. 그런데 그의 그림을 보면 '언제 이렇게' 그렸지? 매번 신기한 생각이 든다.금년에 나이 육십인 롱은 전업화가다. 평생 놀았다. 일주에 두, 세 번은 화가 선후배들과 테니스를 한다. 뒤풀이 길거리 생맥주집(Bia hui)에 따라 가 본 적도 있다. 술을 즐기고, 사람을 즐기고, 대화를 즐기는 그를 볼 때도 그림은 언제 그리나? 그런 생각을 했었다.
굳이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롱은 한결같이 예술가의 지복을 누리며 산다. 그림 외 세상 모든 것들은‘패스’다.‘굿’이다. 친구도, 아내도, 아들도,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가고 싶은 대로 상관하지 않는다. 오직 그림 하나만은 그의 스타일을 견고하게, 그의 성을 단도리하고 산다. 그의 그림은 까칠하다.그는 세상에 두려움이 없다. 세상에 바라는 것이 없고 기대가 없으니 두려움이 없다. 실제로 그는 부동산 부자다. 하노이 구 시가지에 100년 넘은 4층
대저택을 유산으로 물려 받았으니 그는 부자다. (놀라지 말자,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40억원이다). 개방을 하고 지난 30년 꾸준히 집값이 오르고 있는것이다. 그러나 롱은 이전과 변함이 없다. 늘 남루하게 산다. 차 살 생각도 하지 않는다.‘오토바이가 있는데 차는 왜?’가 그의 물질관이다. 그는 부귀영화보다는 창조의 고독을 높이 친다. 그의 그림 앞에서 그림과 마주치는 그의 고독과 외로움을 상상해 본다. 그는 집을 자주 그렸다. 요즘도 하노이 구 시가지에 사라져 가는 오랜 집들
을 화폭에 옮겨 놓고 있다. 집 다음으로 여자를 그렸다. 여자 다음으로 꽃을 그렸다. 집과 여자와 꽃은 롱의 일관된 그림 소재다. 그는 자주 집은 붉은 계통을 즐겨 쓰고 집 밖은 회색을 즐겨 쓴다. 집은 중요하고 특별하고 좋아서 붉은 색이다. 집은 살아 있어야, 건강해야,조심해야 그래서 붉은 색이다. 집 밖은 분명하지 않고, 불확실하고, 오래되고, 단조롭고, 흐려서 회색이다. 이 생각을 롱에게 물어보니‘너 마음대로 생각해도 된다’라는 답이 돌아 왔다. 롱의 마음에는 몇 가지 물감이 있을까 다시 생각해 보았다.

롱의 집 시리즈 그림 앞에 서 있는 일은 행복하다. 내가 사는 스플랜도라는 고요하고 아름다운 지옥이다. 고요하고 아름다운 이 곳에 살면서도 사는 일에 조바심 내고, 초조해하고, 불안해 하고, 조급해 하면 지옥인 것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아름다움이란 우리가 가까스로 견딜 수 있는 무서움의 시작”이라고 쓴다. 사람의 본성은 아름다움을 좋아하도록 타고 난다. 아름다움과 마주치면 속절없이 그것을 제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이 사람의 성정이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거머쥐려고 하는 순간 미끄러져 달아난다. 아름다움은 사유화 되는 것이 아니고 누구에게 귀속되는 것이 아님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공허함에 빠지는 것이다. 아름다운 것들은 그저 지나 가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부재로써만 경험하는 것이다. 지나간 봄 날과 지나간 여자는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롱의 그림 앞에서 잠시 행복한 일은 아름다움의 부재를 몸 속깊이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면 마음은 낮아지고 가난해 지면서 감정은 어떤 슬픔으로 나아간다. 기쁜 슬픔이다. 아름다움이 슬픔은 아니지만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자의 마음을 슬픔에 잠기게 한다. 그 슬픔은 고요하며 움직이지 않으며 세상의 도리나 이치에 가닿게 한다. 모든 아름다움은 소멸한다. 아름다운 가을이 가면 곧 차가운 겨울이 올 거라는 운명을 기어이 깨닫게 한다. 사람과 사람의 사랑과 사랑의 일생은 아름답지만 찰나다. 순간이다. 한번 타오르다 꺼지는 불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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