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동 라오스 오지 여행기 (2)

좋은 베트남 - 2016/06/20 213 0

이튿날은 새벽 일찍 출발했다. 임도 길은 생각보다 험했다. 간간히 승용차와 화물 트럭 오토바이들이 다니기는 하지만 차체가 이리저리 흔들리며 달리는 것이 험난한 폭풍 속에서 높은 파도를 헤치고어렵사리 앞으로 나아가는돗단배의 힘겹고 안쓰러운 모양새이다.이 길이야 말로 밀림 속 목재를 나르는 말그대로 임도이다. 채벌하고 남은 아름드리 나무 둥치 군락들, 껍질이 벗겨져 고사목이 된 나무들과 그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이 따갑다. 길은 패여 웅덩이가 생기고 그 사이로 삐죽 삐죽 화산석이 칼날처럼 서 있다.

밀림 속 임도 길을 접어 들기 전에 세콩강가리조트 같은 분위기의 음식점에서 이른 점심을 시켜 먹었다. 오늘 아침은 그 흔한 찹쌀밥 한 주먹도 먹지 못하고 여기까지 왔으니 얼마나 배들이 고팠을까? 마침 주인 새댁이 베트남어를 잘했다. 베트남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다낭에서 라오스로 이주한 3세대이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기 직전의보트 피플가족이지 않을까 싶다. 남편은 라오스 인이란다. 베트남어는 어떻게 배웠냐니까 초등하교 5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베트남어 수업이 있다고 한다. 태아를 품은 예쁘장한 새댁의 얼굴에서 오래 전부터한 동네에서 함께 살아온 우리 이웃 같은 내음이 풍긴다.

밀림속 동네들은 몇 가호되지 않으면서 멀찌감치 떨어져 마치 이산 저산에 흩어져 사는 산 동네처럼 적막하다. 개울이 없는 민가에는 우물을 깊이 파 물을 길어 먹고 그곳에서 빨래도 한다. 바가지로 물을 길러머리 꼭대기부터 몇 바가지를 내리 부었다. 정신이 맑아진다. 해는 밀림 저 너머 높다란 나뭇가지 위에 걸려 있는데 갈 길은 아직도 반이 넘게 남아 있다. 종일 자갈밭 길과 파헤쳐진 웅덩이를 헤매느라 속도가 나질 않았다. 떠나면서 헤드랜턴을 모두 준비했다. 이 험한 길이 끝이 나거나 좋아지지 않는 한 오늘 밤중이 넘어야 호텔 숙소가 있는 ThangBeng 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다. 띄엄띄엄 보이던 지나가는 차들도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앞에서 오던 트럭을 총무님이 잡더니 돈을 지불 할테니 탕벵까지 함께 가자고 통사정을 해보았지만 길이 너무 멀다고 고개를 흔들며 지나 간지도 오래다. 

어둠이 깔리면서 밤 하늘에는 주먹만한 십자성 별이 우리 앞길을 인도하고 수 없이 많은 별들과 회뿌려 놓은 것 같은 은하수가 달리고 있는 내 정수리 위로 쏟아진다. 맑은 개울 물이 흐르는 이 계곡 저 계곡 사이로 모닥불을 피워 놓고 벌목하는 산판 인부들이 잠자리로 만들어 놓은 움막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이 밀림에서 우리도 함께 야영하고 내일 새벽에 갈까? 모두가 눈이 휘둥그래진다. 이모기 많은 곳에서? 농담인데 모두가 피곤하고 신경이 곤두서서인지 가벼운 농담 한마디에도 촉각을 곤두세운다.

 만약 민가가 보인다면 운반 기구를 마련하여 이 오지의 밀림을 탈출하여 모든 회원들을 안전하게 탕벵까지 모셔야겠다고 마음 먹고 칠흑같이 어두워진 밀림 속을 달리면서 주위를 살폈다. 휙 지나가는데 길 안쪽으로 자동차 세워둔 것이 보인다. 다시 돌아서서 보니 길 안쪽에 민가한 채에 자동차가 한대 서있다.집 모퉁이에 모깃불 이라기에는 큰 불 기둥이 타오르고 집 마루턱에는 부부가 막 저녁을 끝낸 기척이 보인다. 

사이바디 (라오스 인사) 를 외치며 텁석 손을 잡고 악수를 청했다. 순박하고 웃음 끼 가득한 얼굴에 함께 사이바디로 답하는 부부의 눈이 휘둥그래진다. 마루턱에 걸 터앉으며 여기서 탕벵까지 얼마나 더 가야 합니까? 40키로쯤 된단다. 이 차로 함께 가자고 남편에게 애기해 봤다. 그랬더니 아내에게 얘기하라며 손 사래를 친다. 허허 이곳의 주권도 아내에게 있네? 아내에게 다가가서 얼마면 가겠소? 백만 킵을 달란다. 아하 돈만 주면 갈 의사는 있구나. 아내의 손을 텁석 잡고 삼십만 킵에 가자고 너스레를 떨어봤다. 아니나 다를까 펄쩍 뛰면서 말도 하지 말라며 저만큼 자리를피한다.차라리 여기서 자고 가란다. 나도 그러고 싶지요. 저 수 많은 별들을 보면서 모기에 물리고 모닥불 연기 내음을 맡으며 숲의 향기에 취하고 칠흑의 어둠에 취하며 하루를 마감하고 싶소.. 하지만 나는 혼자 몸이 아니라오 ㅎㅎ. 그렇게 펄쩍 뛰던 아내가 내 마음을 읽었는지 육십만 킵에 가잖다. 그렇게 밀고 당기고 웃다를 반복하다 오십만 킵으로 낙찰을 봤다.

 

자동차는 70년대씩 자동차인 듯 양쪽 창문 유리도 없는 낡은 고리짝 같은 차다. 금방이라도 시동이 꺼져 더 이상 못 간다고 내리라고 할 것만 같다. 라이트의 불도 가다가 가끔씩꺼진다. 꺼지면 차를 세우고 후레쉬를 비추어 뭘 만지는지 다시 연결하고 달린다. 달린다기 보다 기어간다는 표현이 낫겠다. 그래도 얼마나 행운이고 감사한 일인가? 불안에 떠는 회원들을 데리고 무사 귀환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여 마음 속으로 껍자이를 외쳐본다.

얼마남지 않은 탕벵 가는 길은 험하고도 힘들었다. 무려 세시간을 차 옆구리에 매달려 왔다. 모두가 임도라이딩에 지치고, 캄캄한 밀림에 놀라고, 바위덩이투성이인 개울을 건너면서 덜컹거리는 차에 앉아 있었다. 금방이라도 물 가운데 차가 멈추어 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에우리 모두는 숨을 죽이며 차 난간이 부서져라 움켜 잡고 있어야 했다. 진흙 먼지로 온통 빨갛게 물든 옷 차림새들과 짐들, 먼지로 뒤범벅이 된 고물로 변한 자전거들 모두의 모습은 거지중의 상거지다. 숙소에 도착해서 씻는 둥 마는 둥 허기를 채우고자정이 넘어 파 김치가 된 몸을 이끌고 침대에 누웠다. 여기까지 어찌 온 것인가 걱정했던 순간들이 아득아득꿈 나라로…..

셋째날 크메르인들의 문화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역사의 뒤안길을 보려 오늘은 왓푸 신전이 있는 참파삭으로 간다. 그러고 팍세에서 하루를 머문다. 신전으로 가는 길은 편했다. 푸시산을 뒤로하고 앞으로는 엄마 품 같은 메콩 강이 느릿 느릿하게 흐른다. 앙카라왓 신전보다 3세기 전에 건립되었다니 어쩌면 크메르인들의 영화도 이곳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신전은흰두교 최고신을 지칭하는 시바신과 참파꽃 문양을 주축으로 해서 건립되었고 앙카라왓 신전처럼 돌의 주 재료는라테라이트란 돌이었다. 이곳을 먼저 보고 앙카라 왓을 본다면 더 많은 역사 공부에 도움이 될 것 같다.

1세기 전쯤 대 지진이 나면서 신전 대부분이 무너졌다고 한다. 세월의 억겁을 더하면서 사람들 손에 파헤쳐졌고 보존되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위대한 크메르 왕을 접견할 때는 서서 오르지 말고 네발로 기어 오르라는 뜻으로 돔이 있는 크메르 신전 어디에나 계단들은 높고 가파르다. 돔 문턱에 걸터 앉아 시원한 바람을 쐬며 멀리 산 아래에서 흐르는 메콩강을 내려다 보며 땀을 식혔다. 언뜻 고려가 폐망하고 새로운 왕조에 합류하지 않은 길재 대감의 시 한구절이 생각난다.

흘러간 역사의 뒤안길은 언제나 이렇게 허망하고 꿈 같은 것인가? 특히 영화를 더 했던 왕조 일수록…

볼 거리가 있으면 더 좋겠지만 볼 거리가 없어도 고생하고 부딪치는 그 맛하나 만으로도 여행의 가치는 충분하다. 가 보지 않은 길은 누구나 두렵다. 지나고 나야 용기를 얻고 미래를 설계한다. 미래는 곧 지난 과거를 거울 삼아 우리들이 살아 있는 증거이고 증표 같은 것이다. 떠날 수 있는 용기만있다면 이 하나만으로도 우리들은 충분한 보상을 받을 것이다.

팍세에서 차를 타고 베트남으로 다시 돌아가는것으로 이번 여행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갑자기 떠난 여행이라 준비도 너무 부족했고 정보도 너무 없어 예상치 못한 길들이 너무 험난했다. 자전거 타는 것이 아무리 좋아도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을 포기하면서 까지야 할 수 없지 않은가? 일상의 활력소 역할만 해 준다면 더 할 나위 없지 않은가.

베트남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회원들 모두 힘들고 끔찍했던 시간들과 힘들었기에 더욱 추억이 되어 버린 시간들을 생각하며 언제 그랬냐는 듯 그래서 벌써 그 시간들이 그리워지고 아쉬움이 밀려 오고 …미련이라고 해야할까.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찰라를벗어나면 평상심이 되는걸..
다 지나가리라 !!
하지만 그 미련의 표정도 잠시인듯하다. 다시 한번 이 길에 도전하고픈 객기가 발동을 한다. 이 못 말리는 객기로 다시 회원들의 눈빛이 반짝반짝해진다. 이래서 나는 우리 하자동이 너무 좋다. 너무 사랑해 늘 식구들의 안부를 묻는다.모두가 한솔 밥을 먹는 가족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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