왁짜지껄 라오스 여행 (3)

좋은 베트남 - 2016/06/22 177 0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루앙프라방은 라오스 북서부 메콩강 유역에 있는 도시로, 14세기 란상 왕국의 수도가 된 이래, 라오스에 들어선 여러 왕국의 수도이자 종교 및 상업 중심지로 번성했으며, 1975년 왕정이 폐지될 때까지 라오스 왕이 머물렀던 유서 깊은 도시이다. 근대화의 폭풍이 휩쓸고 간 아시아에서 과거 모습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이 곳은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 할 정도로 많은 전통 건축물과 유적들을 가지고 있다. 또한 19~20세기에 프랑스 식민지배를 받았던 흔적도 도시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데, 라오스의 전통 건축물과 식민지 시대의 건축물들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 흥미롭다.

친구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떠나다 불심 깊은 나의 처녀 친구는 스님들의 탁발 행렬을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이 일생일대 소원 중의 하나였다. 탁발은 새벽 6시부터 진행되기 때문에 우리는 방비엥에서 루앙프라방까지 심야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밤 10시쯤이 되자, 우리를 버스 터미널로 데려다 주기 위해 쏭테우가 왔고, 쏭테우는 몇 군데의 지점을 더 들려 손님을 태운 후, 버스 터미널로 보이는 곳에 우리를 내려다 주었다. 이미 그 곳에는 여러 무리의 관광객들로 꽉 차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젊은 배낭족들로 대부분은 서양 사람들이었다. 한참을 기다리자, 우리가 타고 갈 대형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에 오르는 사람 모두는 자신보다더 커 보이는 배낭들을 하나씩 들고 있었기에 버스는 사람 반, 배낭 반이 되었다.

유부녀, 낯선 남자와의 하룻밤 동침버스는 2 명이 한 침대를 사용하는 2 층 침대버스다. 우리 셋은 2개의 침대를 맡아 놓고 잠 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한 명의 남자가 난처한 표정을 하며, 우리에게 다가온다. 버스는 이미 만석이었고, 늦게 올라 타자리를 잡지 못한 그 남자는 우리 중한 명과 같은 침대를 써야만 했다. 국적이 어느 나라인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 그 남자도 이런 현실이 매우 당황스럽고 어색했으리라... 혼자 오셨냐고 영어로 물어봐도 영어를 모르는 지 답을 하지 않는다. 우리 셋중 하나는 오늘 이 낯선 남자와 자야만 했는데,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그 남자와 함께 자길 원하지 않았다. (속으로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할 수 없이 우리는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그 남자와 자기로 했고, 나의 슬픈 예감은 어김없이 빗나가지 않았다.

엉덩이를 까고 쪼그려 앉다. 나도 내 옆의 남자도 일자로 똑바로 누워 최대한 몸을 움크리고 서로 닿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이건 자도 자는 게 아니야…. 몇 시간을 그렇게 잠도 잘 못 자고 뒤척이고 있었는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나 보다. 화장실을 가자고 친구가 날 흔들어 깨운다. 비몽사몽한 상태로 우리셋은 화장실에 가기 위하여 버스를 내렸다. 그런데 도대체 화장실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보이는 것은 온통 풀밭 뿐이었다. 우리를 제외한 다른 관광객들은 전혀 어색하지 않은 듯 풀밭 화장실로 향했다. 여자들은 잘 안 보이는 풀밭을 찾아 좀 더 멀리 갔고, 남자들은 버스 근처에서 볼일을 봤다. 우리도 살려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가장 사람들 눈에 안 띌 만한 먼 곳의 풀밭을 찾았고, 우리 셋은 그 곳에서 엉덩이를 까고 쪼그려 앉았다.

다시 제비를 만나다.
새벽 5시쯤 되자, 버스는 루앙프라방에 도착했다. 버스 터미널에는 새벽에 도착하는 관광객들을 태우기 위하여 부지런 한 쏭테우 몇 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탁발 의식이 진행되는 장소까지 가기 위해 그 중에 한 대의 쏭테우에 올랐는데, 그 곳에서 우리는 방비엥에서 우리에게 함께 놀자고 제안했던 젊은 남자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 남자들은 이렇게 다시 또 만난 것은 인연이라며, 루앙프라방을 함께 여행하자고 또다시 제의했지만, 그 남자들과 어울렸던 다른 여자들에게 지갑이 없어졌다는 얘기를 들었던 터라, 우리는 모두 가방을 단단히 챙기며,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무릎 꿇고 앉은 그들에게선 간절함이 보였다.

 너무 일찍 도착해서인지, 탁발 의식이 진행되는 곳에는 여러가지 음식을 파는 장삿꾼들 이외에 아무도 없었다. 장삿꾼들은 찹쌀밥과 바나나 등을 우리에게 팔며, 그것들을 스님들에게 주라고 했다. 땅바닥에 앉을 수 있도록 방석도 빌려주었는데, 우리는 가장 좋은 명당자리에 앉아 스님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스님에게 공양하기 위하여 정성스럽게 음식들을 장만해 온 라오스 국민들과 탁발 의식에 참여하고 싶은 관광객들이 조금씩 몰려든다. 어둠이 조금씩 걷히기 시작할 무렵, 주홍색 장삼을 걸친 스님들이 거리를 가득 메운다. 탁발은 라오스 승려들의 생활방식이자 수행방식으로, 출가 수행자가 무소유계를 실천하기 위해서 음식을 얻어 먹는 것을 뜻한다. 스님이 나에게 다가오자, 아까 구입했던 찹쌀밥을 한 주먹 바구니의 넣어드리고, 바나나도 하나 드렸다. 그렇게 다섯분의 스님에게 공양을 하자, 내가 준비한 음식들은 바닥을 드러냈고, 나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지 못하고 일어서서 다른 사람들이 공양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무릎을 끓고 앉아서 스님께 공양하는 사람들의 모습엔 선량함과 간절함이 보였다. 그들은 아마도 음식을 스님 바구니에 담으면서, 부모의 건강을 빌고, 남편의 성공을 빌었으며, 자식이 공부 열심히 하기를 빌었으리라… 새벽 탁발의식
에 참가하기 위하여, 밤을 꼬박 새었을 테고, 음식을 정성스럽게 만들었겠으며, 몸을 정갈하게 씻었으리라…

신비롭고 매혹적인 여자 같은 도시
오후에 비행기를 타고 하노이로 떠나야 하는 우리는 루앙프라방을 오랫동안 즐길 수 없기에 자전거를 대여해서 루앙프라방을 돌아보았다. 시내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황금 지붕을 인 오래된 크고 작은 사원들과, 활기가 넘치는 탈랏달라 시장 그리고 메콩강 근처의 프랑스식 건물들이 즐비한 골목골목까지 어떠한 한 가지도 놓치고 싶지 않아, 종아리에 알이 베이도록 패달을 밟았다. 내눈에 들어온 루앙프라방을 여자에 비유하자면, 예쁘고 아름다운 여자가 아니라, 신비롭고 매혹적인 여자였으며, 베트남의 도시를 예로 든다면, 호이안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몇 일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은 곳. 그런 평화로움이 이 곳에는 있었다.

우리의 이니셜을 딴 카페를 만들까?
우리가 루앙프라방에 온 또 하나의 이유는 하노이에서 우리의 아지트가 되어버린 조마 카페 때문이다. 하노이에만도 몇 개의 지점을 가지고 있어, 조마 카페는 당연히 베트남 카페인 줄 알았는데, 원조가 루앙프라방에 있다고 하여 라오스에 온다면 꼭 들려보고 싶었었다. 조마는 라오스의 Fair Trade 인증커피만을 판매하는 곳으로 영국, 콜롬비아, 캐나다, 태국등 국적은 다르지만 뜻이 맞는 4명 (2 커플) 의 젊은이들이 동업하여 만든 카페라고 한다. 카페 이름도 그들의 이름 이니셜 (Jonathan & Jocelyn Blair (JO) & Michael & Areerat Harder (MA) 을 따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10년이 넘는 지금까지 사업이 번창하고 있는 걸 보면, 서로의 신뢰감이 깨지지 않고 있나보다. 라오스의 조마는 하노이의 조마와는 또 다른 맛이 있었다. 우리는 그 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우리도 이카페의 주인장들처럼 좋은 생각을 품고 살며, 오랫동안 우정을 지켜가자고 약속 해 본다.

나는 느긋한 라오스가 좋다.
몇 군데의 여행을 다녀온 나는 건방지게도“동남아시아는 거기서 거기야”라는 생각을 해 왔었는데, 라오스는 그런 나의 콧대를 꺽어 버리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가난하지만 깨끗함이 베어있는 도시들은 왠지 자존심이 강한 선비의 모습이었고,순박하고 느긋한 라오스 국민들의 삶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열심히만 살아왔던 한국인의 모습이 과연 옳은 것인가라는 생각을 갖게 하였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보고 가고 싶은 마음 급한 여행자들 마저도 금세 라오스의 느림에 동화되는 듯 했다. 한 번 갔던 나라는 다시는 안 간다는 나의 철칙을 깨어버린 라오스. 내년에 다시 와서 송칸이라 불리는 라오스의 새해 맞이 물 축제에도 참가해 보고, 팍우 동굴과 쾅시 폭포도 구경해보고 싶다. 그 때는 아주 넉넉하게 일정을 짜서 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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