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퐁 한인 상가의 집결지 반 까오(Van Cao)

좋은 베트남 - 2018/08/08 14 0

반 꺼오(van cao)거리는 베트남 어디를 가도 비슷해 보이는 2차선 도로 사이에 작은 상가들이 빼곡하게 얼굴을 내밀고 있는곳이다. 낮에는 조용하다. 저녁이 되면 40분 거리에 있는 한인공단 지역에서 일하던 한인들의 사교와 생활과 엔터테인이 시작된다. 최근에 하이퐁 인구가 늘면서 이곳 상가는 더 이상 빈곳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반 까오(Van Cao) 거리는 2차선 도로를 두고 대칭으로 폭 4M,3-4층 높이의 건물들이 마주 보고 있다. 길이 1Km 정도 거리에 작은 카페와 식당과 아직 상업화 되지 않은 주거용 건물들이 소박하게 동거하는 이 거리는 인간적이었다. 지금은 상업화의 물결이 거세다.

그러나 아직도 길 맞은 편에서‘누구야’부르면 가던 길 멈추고정감을 나눌 수 있는 곳이다. 기어코 손이라도 잡을 심정으로거리를 무단 행단해도 좋은 곳이다. 지나가는 오토바이와 차들은 이기적이지 않고 사람들에게 길을 내어준다. 아직 이 거리는사람 좋게 생긴 이웃집 아저씨 같은 모습이다.

2001년 4월 서울식당(대표 신순철)이 개업하고 이어 2007년12월 아리랑식당(당시 대표 양진상)이 문을 열 때만 해도 이 거리는 한적했다. 2008년 하이퐁 진출 기업 20여 개의 법인장 모임이 시작될 무렵 한국인은 고작 50여명에 불과했었다.

                                                                                                                                                             

                                                                                                                 

                                                                                           

이 거리에 한인 가게 입주의 기폭제가 된 것은 2012년 12월 K 마트(대표 서치현)의 오픈이었다. 김, 라면, 소주, 고추장을 사러 하노이에 가거나 가는 지인에게 부탁하던 번거로움을 해소하면서 K 마트는 이 거리의 사랑방 역할을하게 되었다.


2015년 1월 OK 빌딩(지금은 K-ZONE빌딩)이 들어서고 그 해 4월 LG 전자가하이퐁 인근에 진출하면서 한인들과 한인상가들이 대폭 늘어나고 있다. 한식당, 중식당, 분식점, 치킨집, 베이커리, 미용실, 여행사, 정관장, 호텔, 마트, 휘트니스, 가라오케 등이 있다.

어두워지면 부드러운 일몰의 사소한 충고를 듣던 인간적 거리 반 까오(VanCao)에도 자본의 욕망과 열기가 끈적거린다. 2015년 LG 전자의 생산기지가대거 하이퐁으로 진출한 시기와 무관하지 않다. 대형 상업 시설과 유명 브랜드가 서서히 고개를 내 밀고 있다.


최근 2년 사이 서울에서, 하노이에서 매번 상가를 보러 오는 모양이다. 한국부동산이 없는 이 곳에 어떻게든 거주 한인들과 줄을 넣어 은밀하게 시장조사를 하고 있다. 업종 중에는 외식업의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유흥업은이미 포화다.

이 거리의 빈 가게는 나오자 마자 거래된다.월세 2천만 동 하던 4층 작은 상가가 이제는 3천만 동으로 상향 조정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반은 현지인의 주거지다. 현지인들은 세태에 무관하게 그냥 사는 이와 한국인의 조급한 마음을 지켜보는 이와 적극적으로 상가를 유치하는 이로 나누어 진다.

하지만 급하게 상가로 전환되는 추세에 가격을 슬쩍 올려 받고 떠날 조짐을 보인다.남루하고 허름했지만 그 속에 사랑이 남아있던 거리가 상업화 되면서 사람들은 물질적이 되고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거리에서 소외되고 있다. 사람보다 상가를 더 기억하는 거리로 바뀌고 있다.

조만간 사람들은 이 거리의 풍경 밖에서 이거리를 추억하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예감을 가지게 된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반 까오(Van Cao)는 베트남의유명한 뮤지션이었다. 그의 음악을 기억하는 이는 이미 기억 너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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