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에서 향수(鄕愁)에 젖다

좋은 베트남 - 2017/11/07 23 0

맛은 멋과 같이 사용하면 틀리지 않는다. 맛은 객관적이기 보다는 주관적이며 과학적이기 보다는 정서적이다. 맛은 자주 그리움으로 사람들의 뼈와 살과 정서 속에 내장되어 있다. 엄마가 해준 음식은 그 통상적인 맛보다 그 시대, 그 시절의 정서와 회한과 상념이 버무려진 , 추억 혹은 결핍 같은 것이다.

하노이에 오래 산 교민들은 고궁에서

자주 향수(鄕愁)에 젖는다. 같이 고기를, 찌개를, 소주를 나누던 사람과 시간들이, 보이지 않는 세월의 문신으로 남아있는 곳이 고궁이다. 고궁은 오래된 식당이다. 고궁은 기억과 추억을 소환하고 호명하는 식당이다. 작금 하노이에 식당 창업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지난 달도 한 두 가게가 문을 열었고 다음 달도 두 세 가게가 오픈 할 예정이다. 하노이 미딩(My Dinh)은 한국 식당 전시장처럼 보인다. 한인과 한글이, 한국인 특유의 경쟁과 문화가 포개어져 미딩은 서울의 한 지역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지난 10월 기준으로 하노이 한인식당은 크고 작은 규모를 포함하면 140개 점이 된다. 대략적으로 미딩지역에 60개, 경남 랜드마크와 그 인근에 30개, 쭝화(Trung Hoa)와 중낀(Trung Kinh)에 40개, 기타 지역에 10여 개가 포진하고 있다. 한국과 베트남의 여러 여건을 고려할 때 한인들의 하노이 식당 창업은 계속될 전망이다.

지난 10년 우리나라 자영업 생존율은 20.1%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이 국세청과 통계청에서 받은 자료에 의하면 2007년부터 2016년까지 자영업 창업 자수는 10,085,114만개, 폐업자수는 8,057,593만 개였다. 자영 업자 가구의 평균 부채는 2012년 7,960만원에서 지난 2016년에는 9,812만원으로 1,852만원(19%) 증가했다.

반면, 소득은 2012년 4,985만원에서 지난 2016년에는 5,611만원으로 626만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한편 우리나라 자영업자비중은 2015년 25.9%로 OECD 평균인 15.4%보다 높았고 그리스, 터키, 멕시코에 이어 자영업 비중이 회원국 가운데 4위였다.

하노이 한인식당가는 어떠할까?

지난 10년 동안 동일 상호, 동일 대표, 동일 업종을 유지하고 공백 없이 운영해 온 곳은 3개소뿐이다. 그곳은 고궁과 코리아나 와 한국관 이다. 이들 식당의 공통점은 베트남 조기진출(1990년대), 홀가분한 1인 창업, 오직 식당업에 집중, 그리고 변함없는 성실성이다. 이중 고궁(대표 강정미)의 지속적인 성장은 주목할만 하다.

고궁은

식당의 기본적인 4요소, 1) 창업자의 마인드와 능력, 2) 입지,3) 아이템, 4) 자금을 두루 갖춘 모범 사례다. 고궁의 강대표는 한인역사의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1990년대에는 교민여동생으로, 2000년대에는 교민친구로, 2010년대에는 교민이모로 교민사회에 각인되고 있다. 하노이에 살다 떠난 수많은 한인들에게 고궁과 강대표는 향수다. 가끔 고궁에서는 60대, 70대 노신사들이 강대표를 얼싸안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강대표를 통해 지난 날 자신들의 시간과 상념을 추억하는 것이다.

고궁의 지속적인 성장 비결은

보이지 않는 변화다. 코카콜라는 지난 100년 동안 보이지 않는 변화를 지속했다. 오리온 초코파이도 지난 60년 끊임없는 변화를 시도해 왔다. 그 변화는 처음에는 고객에게 감지되지 않다가 시간이 흐르면 비로소 알게 된다. 생존해 있고 성장하고 있으므로, 오래되었지만 코카콜라와 오리온 초코파이는 싱싱한 청춘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고궁의 이미지도

늘 교민 곁에 친근한 이웃집처럼 다가온다. 보이지 않는 듯 변화해 온 고궁은 늘 맛이 한결같다. 요리사가 수시로 바뀌어도 맛과 서비스는 변하지 않는다. 역설적이지만 맛이 변화하지 않게 끊임없이 변화해야 하는 것이 식당이다. 어제보다 더 신선한 채소와 고기를 구매하고 어제보다 더 깊은 방법으로 숙성하고 어제보다 더 입에 와 닿는 맛으로 요리하는 것이다. 현지의 재료가 안되면 한국에서 아예 공수한다. 소꼬리가 그렇고 도가니가 그렇다. 이문이 박해도 안정적인 맛을 위한 조치다. 이런 것이 변화다.


식당이 안정되면 딴 생각을 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고궁은 딴 생각을 따돌리고 식당에 집중해 왔다. 변화하려는 마음을 한결같이 변화하지 않게 변화하는 것도 변화다. 고궁의 강대표는 늘 매장 입구에 있다. 그곳은 주방에서 나오는 음식과 홀과 계산대가 한 눈에 보이는 곳이다. 고객에게 음식이 나아가기 전에 강대표의 눈길과 발길이 스캔 되는 곳이다. 그 자리에 강대표는 20년을 지켰다. 피곤한 일이고 힘든 일이다. 어렵게 일해왔다. 그것이 성공비결이었다.

대우호텔 인근에 있던 고궁은 2014년 가을 이곳에 입주했다. 그 당시만해도 경남단지에서는 한산한 아파트 입구 쪽이었는데 고궁이 입주를 결정하자 뒤이어 K MARKET도 고궁 1층에 같은 시기에 오픈했다. 고궁에게 날개를 달아 준 승운이라고 할수 있다. 도시 중심의 랜드마크형 단지는 늘 잠재력과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이다.


믿고 보는 배우가 있듯이 믿고 먹는 곳이 고궁이다. 고궁의 아이템은 한식이다. 새로울 것도 남다를 것도 특이한 것도 없다. 마케팅 용어로 말하자면 저관여 아이템이다. 대중적이고 문턱이 낮고 누구나 쉽게 공급하고 소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특이하지 않은 아이템이 고궁에서는 특별해지는가?


우선 기존 상차림이 넉넉하다. 반찬은 신선하다. 먹다 보면 자꾸 가져다 준다. 입구에 베트남 매니저가 쓴 것 같은 삐뚤삐뚤 요일별 추천메뉴는 메뉴선택의 갈등을 줄여준다. 요일별 추천 메뉴는 오래된 고궁의 일상 이벤트다. 이는 내부적으로는 재료 구매부터 요리까지 선택과 집중이 가능하다. 신선한 음식을 고객에서 제공하게 되는 이유다.


고궁의 개별 아이템은 두루두루 주전급이다. 오랜 시간의 내공이 음식에 담겨 있는 것이다. 탕 하나, 찌개 하나마다 스토리가 있다. 메뉴 하나 하나 마다 직원들과 더불어 지지고 볶았던 땀과 눈물과 시간이 축적되어 있는 것이다. 무엇 하나 쉽게 만든 것이 없다.


이직이 빈번한 요즘에도 철저한 교육을 통해 일사불란한 서비스도 고객에게 안정감을 더 해준다. 무엇보다 20년을 똑같이 강대표가 현장에 있다는 것 하나로 신뢰가 쌓인다. 너무 흔해서 질릴 것 같은 아이템이 고궁에서 정겹게 살아나는 이유는 아마도 창업자의 한결 같은 마음씀씀이일 것이다. 적게 먹는다고, 많이 먹는 다고 내색하거나 차별하지 않는 강대표의 심성도 주요 경쟁력이다. 오래된 것들의 힘을 느낄 수 있는 곳이 고궁이다.


하노이 교민사회의 안개꽃 같은 고궁의 성공 사례는 흐뭇한 일이다. 변함없고 한결 같은 창업자의 자세, 변화의 마인드, 떠날 때 떠나는 모험 정신은 또 새로운 작품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댓글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