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사랑해서 산으로 갔다 아이를 사랑해서 도시로 왔다

좋은 베트남 - 2018/07/25 135 0

경남빌딩에서 40분. 하동. 화가는 작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지은 지 5년 된 아파트. 벌써 낡았다. 실내는 단조롭다. 정물화 속 꽃 같은 부인. 부인은 같은 하노이 미술대학 출신이다. 대학 때 만나 결혼했다. 지금 아이 둘은 10살, 6살. 학교에 갔다.

 

화가 Mai Xuan Oanh의 고향은 하이증이다. 아버지는 극장에서 그림을 그렸다.어릴 적부터 그림은 숙명이 되었다. 형도 화가다. 유명한 하노이미술대학은 늦게 들어갔다. 늦게 들어가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요즘은 주 3번 대학에 출강한다. 아내는 학원에서 그림을 가르치고 있다.

 

집이 좁아 인근에 화실을 얻었다. 마침 공사 중이라 사진으로만 보았다. 화가는 길이 12M 대작을 그리고 있었다. 얼핏 보니 하롱베이다. 아마도 공기관에 걸 그림같았다. 벌써 3개월째 그렸다. 국회에 걸 그림이다. 국회가 문화관광부에 문의해서 화가를 찾았다.

 

문화관광부에서 바다를 잘 그리는 화가를 수소문했다. 지난 해 화가 Mai XuanOanh는 국회 초대작가로 선정되었다. 3년 전에도 국회의 의뢰로 그림을 그려 국회회의장에 걸었다. 그때는 산이 주제였다. 매년 배트남 국회에서 제작하는 달력에화가의 그림이 있었다. 2016년 6월. 달력 속에 그의 그림이 펼쳐져 있었다. 화가는산을 그렸고 지금은 바다를 그리고 있다. 산 같은 아버지, 바다 같은 어머니. 국회는 그림을 통해 인민들을 위한 부모가 되고 싶었던 걸까?

 

화가의 대작을 보며 화가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극장에서 매일 그림을 그리던 아버지, 상영작의 주연 얼굴에 덧칠을 하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들이 자라 국회에 걸 그림을 그린다. 자랑이고 영광이고 보람이다. 이런 인생극장은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정작 화가는 고요했다. 인터뷰는 말없는 그림을 그리듯 진행되었다. 화가는 말이 적었다. 그의 아내도 말이 없었다. 우리는 화가가 이전에 그린 그림만 보고 있었다. 사진보다 더 실물 같은 그림을 보고 있었다. 그림 속에는 산 속에 아이와 여자와 노인들이 자주 등장했다. 선라(son ra) 지역이었다. 아내의 고향이다. 하노이에서 7시간. 선라. 산이 병풍처럼 도시를 보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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