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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용의 글로벌시대] 말라리아 '강 건너 불' 아니다

좋은 베트남 - 2017/04/18 73 0
모기는 말라리아, 뇌염, 뎅기열 등 인간에게 치명적인 질병을 옮긴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사람에게 가장 위험한 동물은 무엇일까? 백수의 왕으로 꼽히는 사자일까, 옛날 어린이들이 가장 무서워했다는 호환의 주인공 호랑이일까? 아니면 맹독을 지닌 뱀이나 여성이 보면 질겁하는 바퀴벌레인가? 정답은 눈에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모기라고 한다.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이 지난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모기에 물려 말라리아·뇌염·뎅기열 등에 감염돼 목숨을 잃는 사람은 한 해 72만5천 명으로 뱀(5만 명), 개(2만5천 명), 악어(1천 명) 등 다른 동물로 인한 사망자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모기가 옮기는 감염병 가운데 가장 흔하고 치명적인 것은 말라리아다. 아프리카에서는 말라리아에 걸린 어린이가 1분에 한 명꼴로 숨진다.

오는 25일은 '세계 말라리아의 날'이다. 2000년 4월 25일 아프리카 정상회의에서 '아프리카 말라리아의 날'이 제정됐다가 2007년 5월 세계보건기구(WHO) 총회 결의에 따라 이듬해부터 '세계 말라리아의 날'로 확대됐다. 말라리아는 이탈리아어로 '나쁘다'란 뜻을 지닌 'mal'과 '공기'란 의미의 'aria'가 합쳐진 말이다. 예전에는 나쁜 공기를 통해 전파되는 것으로 알려져 그런 이름이 붙었다가 1907년 프랑스의 알퐁스 라브랑이 모기가 매개체라는 사실을 알아내 노벨상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는 말라리아를 학질이라고 불렀는데, 어렵고 힘든 일로 진땀 빼는 것을 빗대 '학(질)을 떼다'라고 한다.

말라리아는 열원충(말라리아원충)에 의해 발병한다. 사람에게 감염되는 열원충은 열대열·삼일열·사일열·난형열 4가지가 있고, 삼일열이 가장 흔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것은 주로 열대열이다. 모기에 물리면 모기 침샘에 있던 열원충이 몸에 들어와 간에서 잠복기를 보내며 증식한 뒤 적혈구로 침입해 오한·발열·발한·설사·두통·복통·근육통 등을 일으킨다. 열대열 말라리아에 걸리면 고열이 지속되지만 삼일열과 난형열은 48시간, 사일열은 72시간 주기로 열이 났다가 오한이 든다. 말라리아가 무서운 까닭은 뇌에 침투해 병변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열원충이 흡착해 뇌혈관을 막아버리면 환자는 혼수상태에 빠진다. 이런 증세는 소아들에서 잘 일어나고, 아직은 특효약도 없다.

유엔재단이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모기장을 보내자는 캠페인을 2010년 8월 22일 서울광장에서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말라리아 발생 지역에 사는 전 세계 인구는 약 33억 명에 이른다. 매년 2억 명이 넘는 환자가 발생하고 이 가운데 43만여 명이 숨지는데, 사망자의 87%는 5세 미만의 아프리카 아동이다. 2002년과 2003년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사망자가 744명이고, 2012년부터 2016년까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645명인 것에 비하면 말라리아가 얼마나 무서운지 짐작할 수 있다.

말라리아는 우리나라에서 1984년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다가 90년대 들어 다시 나타났다. 북한에 살던 모기들이 먹을 것이 없어 남쪽으로 내려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발병 지역도 인천시 강화, 경기도 파주·연천, 강원도 철원 등 북한 접경 지역에 집중돼 있다. 2000년에 감염자가 4천 명까지 치솟았다가 줄어들었는데, 2013년부터 증가세로 돌아섰다. 2014년에 638건, 2015년 669건이었다. 경기도 등의 북한 말라리아 방역 지원이 남북관계 경색으로 2012년부터 중단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말라리아 종류는 증상이 가볍고 치료제도 잘 듣는 삼일열이지만, 열대지방을 여행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해마다 100명 가까운 해외 여행객이 말라리아에 걸려 귀국한다.

2011년 5월 23일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 경기도, 인천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관계자들의 환송을 받으며 말라리아 방역 물자를 실은 트럭들이 북한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국제구호기구 월드비전은 세계 말라리아의 날을 앞두고 아프리카 모잠비크의 10살짜리 소녀 마르타의 사례를 소개했다. 이미 두 딸을 말라리아로 잃은 아빠 마누엘은 이번에도 손을 써보지도 못한 채 마르타를 땅에 묻었다. 하늘에서는 건강하게 자라길 빌며 모기장도 함께 넣어주었다. 마누엘은 이렇게 한탄했다. "말라리아는 거대한 전쟁이에요. 실제 전쟁에서는 협상의 여지라도 있으나 말라리아에는 그조차 없어요. 전쟁을 피할 평화지대도요."

유엔난민기구는 우간다 나키발레 난민촌에서 18개월 전 태어난 아그네스의 이야기를 홈페이지에 실었다. 부모는 내전을 피해 2008년 콩고민주공화국에서 피란을 왔다. 아그네스는 말라리아에 걸려 유엔난민기구 병동에서 치료받고 있고 엄마 아네트도 말라리아를 앓고 있다. 난민촌에 왔을 때 받은 모기장은 낡고 찢어져 구실을 못한다고 한다. 아빠 존은 "한 달이라도 우리 가족이 말라리아에 걸리지 않고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난민촌의 보건전문가 크리스토퍼 니오롱가는 "집이 있는 사람은 모기장이 없어도 아이를 지킬 수 있지만 난민촌 아이들은 두 명 중 한 명만 모기장에서 잘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엔난민기구 병동에서 아그네스의 부모가 말라리아에 걸린 딸을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유엔난민기구 제공]

 

탤런트 김성찬 씨의 사망 사고는 18년이나 지났지만 지금도 많은 사람의 기억에 생생하다. 김 씨는 KBS 2TV '도전 지구탐험대' 촬영을 위해 라오스로 떠났는데, 다른 사람의 대타로 급히 투입되는 바람에 1주일 전부터 복용해야 하는 말라리아 예방약을 먹지도 않았다. 귀국 후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다가 쓰러졌고 병원에서는 과로로 진단했다. 그런데 집에서 쉬던 중 혼수상태에 빠졌다. 급히 병원으로 옮겨져 말라리아 판정을 받았지만 이미 열원충이 뇌에 침투해 4주 만에 숨졌다.

유엔재단, 국제난민기구, 국제말라리아재단, 월드비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등 국제기구와 구호단체는 세계 말라리아의 날을 맞아 살충처리 모기장, 말라리아 예방약과 진단 키트 등을 발병 지역에 보내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5월 5일 세종시를 시작으로 10월까지 부산·군산·대구·서울에서 국제어린이마라톤대회를 열어 말라리아의 위험성을 알리고 아동 지원 기금을 모금한다.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모기는 밤잠을 설치게 하는 성가신 존재가 아니라 무시무시한 저승사자다. 말라리아의 공포로부터 이들의 맑은 눈망울을 지켜줘야 한다. 우리나라도 말라리아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heey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