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들의 학교 - EVEREST SCHOOL INTERNATIONAL CLASS

좋은 베트남 - 2018/04/13 52 0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 1989년 강우석 감독이 발표한 영화 제목이다. 이 영화 한 편이 사회에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물론 영화라는 장르가 시대상을 담는 그릇으로써 당시의 '성적지상주의’적 교육 현실을 비판하기 위한 의도이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제목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며 '금과옥조(金科玉條)' 가 되어버렸다는 의외의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행복' 한 삶을 살기 원한다. 굳이 '인간 삶의 지선(至善)은 행복’이라는 아리토텔레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이 행복이라는 궁극의 상태는 참으로 다양하고 변화무쌍해서 어제의 행복이 오늘의 행복과 같지 않고, 이 행복이 행복인 경우도, 아닌 경우도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돈이 많다고, 권세가 높다고 다 행복한 것도 아니며, 반대로 돈이 없거나 권세가 낮다고 다 불행한 것도 아니다.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어떻게 세상을 사는냐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행복과 성적’의 관계는 비례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라는 메시지는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 돈을 많이 가진 것이, 권세가 높은 것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행복’에 더 근접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성직자나 탈속적 가치를 추구하는 '고고한 일부의 사람을 제외하면 말이다. 냉수로 허기를 이겨내거나 얼어 죽을지언정 곁불을 쬐지 않겠다던 '딸깍발이' 들이나, '무소유' 를 실천하다 열반에 든 법정 스님, 선종(宣宗) 당시 전재산이 10년 넘게 탄 '소나타' 자동차 한 대이었다던 김수한 추기경 같은 분들에게는 해당될 수 없는 논리일 것이다. 그러나 범인(凡人)에게는 그 세속적인 것들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이렇게 볼 때 '행복은 성적 순' 일 수밖에 없다. 2할 5푼을 치던 야구 선수가 각고의 노력으로 3할 대 타자가 되었다면, 첫 음반을 10만 장 팔았던 가수가 두 번째 음반은 20만 장을 팔았다면 행복하지 않겠는가? 또한 1학년 성적이 60점이었던 아이가 2학년이 되어서 70점이 되었다면, 80점을 받던 아이가 90점을 받게 되었다면 행복하지 않겠는가? 어디 아이뿐이겠는가, 그 아이의 부모는 어떠할 것이며, 그 아이의 형제자매는 어떠할 것이며, 그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어떠하겠는가? 그렇다면 아이의 성적으로 행복해질 사람은 다른 경우보다 더 많아지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성적이 좋아진 아이는 미래에 대한 더 많은 설계를 할 수 있다. 더 많은 꿈을 꾸고, 더 높고 넓은 꿈을 꿀 수 있다. 공부는 바로 아이들이 꿈 꿀수 있게 하고,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도구이다. 자신이 꾸는 꿈을 이룰 수 있는 초석이 공부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공부는 세상을 보는 눈이 되기 때문이요, 귀가 되고 입이 되기 때문이다. 만일 세상을 보고, 듣지 못한다면, 그래서 세상에 대해 말할 능력이 없거나 모자라다면 모자란 만큼만 세상을 꿈꾸게 된다. 반대로 눈과 귀가 밝은 사람은, 공부를 제대로 한 사람이라면 좀더 나은 꿈을 꾸게 되고 그 꿈을 이루게 될 것이고 그래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행복은 성적 순’이다. 더구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들은 대체로 두 유형이 있다. 자신의 목표나 진로가 확고한 경우, 즉 꿈을 가진 아이들이다. 이런 유형의 아이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자신이 소화해야 할 학습량을 충족시키려고 노력한다. 성적이 좋아지지 않을 수 없다. 다음은 재미를 느끼는 아이들이다. 수학 문제를 풀어내면서, 외국어의 귀가 열리고 입이 터지면서 느끼는 즐거움이다. 성취감이요, 보람이 된다. 이런 학생들은 공부하는 과정을 결코 고통스러워하지 않는다는 공통점도 있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유형도 결국 마찬가지이다. 목표의식이 없거나 공부에 재미를 붙이지 못한 경우이다. 공부에 재미를 붙이지 못하니까 다른 재미를 찾으려고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일탈적 행동이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문제 청소년이라는 말은 옳지 않다는 논리가 되기도 한다. 그 아이들의 일탈은 선생님과 부모님들의 과오이다. 아이들에게 목표의식도, 공부의 재미도 주지 못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일탈을 통해 누리는 즐거움은 소비적이며 일회적인 즐거움이다. 반면 공부를 통해 얻는 즐거움은 생산적이며 지속적인 즐거움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줘야 한다. 목표의식을 심어주고, 즐거움을 느끼게 해야 한다. 그를 위한 최상의 방법은 사랑이다. 그리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은 '기다림' 이다. 아이들을 믿고 존중하며 아이들이 자신의 길로 들어설 때를 기다려 주는 일이야 말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이것이 학교가 그리고 교육이 담당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요, 근본이라고 생각한다.

 

'피그말리온' 이야기가 생각난다. 돌덩이를 피가 돌고 체온을 가진 인간으로 만든 그리스 신화이야기다. 우리는 조각가 피그말리온이고 싶다. 신화 속의 피그말리온처럼 세상에 단 하나의 원석인 우리 아이들을 가장 빛나는 보석으로 만들고 싶다. 우리 아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들이 되도록 만들고 싶다.

 

---

Trường Tiểu Học & Trung Học Cơ Sở EVEREST
Ngõ 106 +300m Hoàng Quốc Việt, Cầu Giấy, Hà Nội.
Website: www.everestschool.edu.vn
Email: everestschool.hanoi@gmail.com
Mobile: 097-2003-090
Katalk: live4155

 

댓글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