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되고 싶어요 - 화가 Nguyen Van Toan

좋은 베트남 - 2017/08/07 67 0

 

너무 어린 화가. 화가라기 보다 학생 같은 화가. 1986년 생 화가 Toan은 그의 모교 앞에서 입시학원을 하고 있었다. 하노이산업미술대학 앞에 가면 작은 화방들이 옹기종기 있고 화방 사이에 그림 학원이 드문 드문 보인다. 그 중에 하나가 Toan의 학원이다.

 

학원은 달랑 방 2개, 그것도 작은 4층(폭 3M) 건물에 3층만 빌린 것이다. 좁고 옹색한 계단을 타고 돌고 돌아 3층에 이르니 눈물이 와락 쏟아졌다. 미술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10대들이 꽉 차 있었다. 발 디딜 틈 조차 없는 방, 미동도 않는 누드 모델. 숨 죽여 데생을 하는 손가락, 그리고 고요한 눈동자들, 작은 그림의 신전이 있었다. 예술의 처음은 이렇게 시작하는구나. 예술은 좁은 방, 옹색한 방에서가 아니라 작지만 뜨거운 가슴에서 시작되는 구나…
청년화가 Toan은 흥엔에서 아주 작은 가게주인의 아들로 자랐다. 부모는 군인이 되기를 원했다. 자주 그림을 그리고 낙서를 즐기는 아들이 못마땅했다. 부모의 믿음은 견고했다. 군인이 되어야 한다. 그게 안정이다. 그게 미래다. 평화다. 군대라는 말, 귀에 못이 박혔다.

 

Toan은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이후 20대 초반은 부모와 끊임없는 불화를 겪는다. 일반 대학 중퇴, 군대 입소와 제대, 경비, 웨이트 생활이 이어졌다. 부모와는 만남은 잠시 끊었다. 결국엔 하노이산업미술대학에 입학했다.

 

 

 

미술대학은 Toan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또래보다 5년이 늦은 대학생활. 학교가 소중했다. 강의도 소중했다. 그림이 주제가 되는 한 모든 것이 감사했다. 공사장에서, 술집에서, 경비실에서 조교실에서 알바를 하며 미술대학을 마쳤다. 얼굴이 펴지고 마음이 하늘로 펴진 시간이었다. 그림, 너무 좋아요. 이제는 가르치는 것도 너무 좋아요. 결혼도 생각 없어요. 그림과 살고 싶어요. 라고 Toan이 말했다. 그림에 대한 모든 질문의 답은‘좋아요’였다.

 


예민하고 섬세했던 20대 초, 부모와 심한 불화를 겪었던 Toan은 뜻밖에도 부모가 사는 농촌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지금 화실을 하는 것도, 그림을 공부한 것도, 결혼을 하지 않은 것도, 다 시골로 돌아가고 싶어서 한 것처럼 보인다. 저는 자연이 좋아요. 숲 속에 나무 한 그루가 되고 싶어요, 그 나무 아래 작은 풀이 되고 싶어요. 그 풀 곁에 말없는 돌멩이가 되고 싶어요. 그의 꿈꾸는 눈을 보는데 잠시 그가 숲 속의 한 그루 나무처럼 보였다.

 

화실은 나날이 성황이다. 그의 무심한 마음에 더 학생들이 몰리는지 모르겠다. 과거의 그가 아니다. 남루했던 그가 아니다. 지금 그는 풍족하다. 유학을 다녀온 웬만한 젊은이보다 그의 수입은 많다. 2배, 3배 정도 많다. 풍요로운 현실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자연으로 가고 싶은 그를 잡고 있다.
소문과 소음으로 시끄러운 도시는 물질로 그를 놓아주지 않고 있다. 미래는 마음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10년이 될지, 20년이 될지 그의 귀향은 아무도 모른다.

 

나무가 되고 싶은 그를 보며 말년에 정원 일에 몰두했던 헤르만 헤세가 생각났다. 세계대전의 광풍을 겪으며 인간 내면에 깃든 무자비함, 폭력성, 대량살육의 끔직함에서 비롯한 사람 기피, 사회기피는 그를 자연으로 내 몰았다. 지금 세계는 경제전쟁 중, 물신주의로, 돈에 목숨을 거는 세태 속에서 그는 언젠가는 자연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거짓의 낙관주의가 득세하는 세태를 등지고 오로지 정원 일에 몰두하면서 작품을 쓴 헤르만 헤세처럼 자본주의 전쟁터를 떠나 그도 언젠가는 고요한 나라, 숲 속에 나무가 되는 나라로 갈 것이다. 그의 그림 속에서 꽃들의 달콤한 향기, 풀잎에 비치는 햇빛의 너그러움, 잎을 흔드는 바람의 싱그러움이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날을 기대해 본다.

 

벌써부터 그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언어를 버리고 저 나무의 언어 그 침묵의 언어를 즐기고 있다. 어리지만 성숙했다.인터뷰 내내 그는 말없이 마셨다. 물을 마시고, 차를 마시고, 술을 마셨다. 말없이. 그런 하노이 밤은 아름다웠다. 내 고갈된 사색의 정원에도 시들지 않은 싹이 조금 보였다.

 

예민하고 섬세했던 20대 초, 부모와 심한 불화를 겪었던 Toan은 뜻밖에도 부모가 사는 농촌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지금 화실을 하는 것도, 그림을 공부한 것도, 결혼을 하지 않은 것도, 다 시골로 돌아가고 싶어서 한 것처럼 보인다. 저는 자연이 좋아요. 숲 속에 나무 한 그루가 되고 싶어요, 그 나무 아래 작은 풀이 되고 싶어요. 그 풀 곁에 말없는 돌멩이가 되고 싶어요. 그의 꿈꾸는 눈을 보는데 잠시 그가 숲 속의 한 그루 나무처럼 보였다.

 

화실은 나날이 성황이다. 그의 무심한 마음에 더 학생들이 몰리는지 모르겠다. 과거의 그가 아니다. 남루했던 그가 아니다. 지금 그는 풍족하다. 유학을 다녀온 웬만한 젊은이보다 그의 수입은 많다. 2배, 3배 정도 많다. 풍요로운 현실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자연으로 가고 싶은 그를 잡고 있다.
소문과 소음으로 시끄러운 도시는 물질로 그를 놓아주지 않고 있다. 미래는 마음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10년이 될지, 20년이 될지 그의 귀향은 아무도 모른다.

 

나무가 되고 싶은 그를 보며 말년에 정원 일에 몰두했던 헤르만 헤세가 생각났다. 세계대전의 광풍을 겪으며 인간 내면에 깃든 무자비함, 폭력성, 대량살육의 끔직함에서 비롯한 사람 기피, 사회기피는 그를 자연으로 내 몰았다. 지금 세계는 경제전쟁 중, 물신주의로, 돈에 목숨을 거는 세태 속에서 그는 언젠가는 자연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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